오지게 사는 촌놈

우리 할머니(첫번째 이야기)

농부2 2002. 3. 19. 20:16




제목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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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이는 경로우대증이 석장이나 있다.
할무니(아흔일곱살), 아부지(일흔아홉살),
어무니(일흔살)...
어떤 때는 가끔씩 넘들 잘사는 나라 겉으먼 여그 세사람 연금만 갖고도 배지 따땃허니 애 안터주고 사껀디...허는
씨잘떼기도 없는 생각도 해 본다.
근다고 돈이 욕심이 나서 시방 여그서 말허는 것은 아니다.

이약허자먼 그렇다는 것이고
시방부텀 세상을 참말로 징허개 오래오래 살아 오신 우리 할무니 이약을  쬐까니 해 볼랑깨 양념삼아서 새살로 해 보는 소리다.

세분들
나이 차이도 희안해서 구년 전에는 우리 할무니가 여든 여덟, 우리 아부지가 칠십, 우리 어무니가 예순하나...그래서 米壽(미수), 七旬(칠순),
回甲(회갑)잔치를 한뻔에 뻑쩍지근허니 했었는디 역부로 맹글라고 해도 어렵운 희안험시롱도 오진 일도 있었다.

우리 할무니는
느제(시방은 어치라고 부르는)라는 짚은 산중 동네서 열세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동갑내기 신랑헌티 시집을 오싰단다.
그 때부텀 시집에서 불러진
‘느제떡’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친정집이서 에릿을직애 부르던 이름도 잊어삐리고 오늘 입때까지 팔십사년을 한 동내서 뿌렝이가 나도 오지개 날만큼
오래 사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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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리 에린 나이로 시집을 왔는지, 와서는 어쨌는지 궁금헌 일들도 많체마는
조선시대 임금님부텀 모시고 살아오신 양반들의 속을 시방 우리가 어찌 알것는가, 엔간헌 일들은 젝제금이 대충 알아서 상상들 허시기로
허고...

그래도 아들 넷에 딸 셋을 나서 참말로 알토란거치 잘 길러서 딸들은 싹 다 부잿집 맏며느리로 에우살이허고 아들들도 삐뚤이
어쭐이 하나도 없이 잘 살고 있응깨 거그에 대서는 진 말 짜른 말 헐 것이 없다.

옛날에는 한지붕따까리 안에서 팔촌이 항꾸내
살았다고 해서 상구 어려분 일인 줄로만 알았는디 시방 내 새끼들만 해도 볼쑤로 할무니부텀 세먼 육촌간이 생깃고 큰 놈이 열일곱살이나 뎅깨 나가
쬐끔만 일찍이 볼강기맀으먼 팔촌 정도는 볼쌔 마찼을틴디 이런 걸 보먼 팔촌, 십촌은 한식군디 요새는 사촌만 되도 뜸벙허니 새가 뜨고 넘 보덱끼
헝깨 서운헐 때가 많다.

자꾸 새살이 딴디로 샐라고 허는디 우리 할무니는 나이가 아흔이 넘음시롱부텀은 귀가 잘 안들리기 시작허더마는
오륙년 전부텀은 치매기가 있어 갖고 사람들을 보고도 금새 알았다가도 또 보먼 이저삐리고 “누~요? 어디서 왔소?” 허고 묻는 통에 웃을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디
큰손주인 나는 아직까장 안헷갈리는거 보먼 항시 찌대고 상깨 그런갑다.

그래도 눈은 볼가서 시방도 바늘귀에
실을 낄 정도라먼 말 다했제?
그 나이 묵도록 중년에 풍기가 있어서 한본 혼이 나고부텀은 묵던 댐배도 끊고 쇠괴기 말고는 육괴기도 입에
안대고 전딤시롱 이 날 입때까장 조신허고 살았는디 촌 살림에 시방도 귀헌 쇠괴기를 맨날 사다가 봉양헐 수도 없고 근다고 우리만 돼기괴기 사다가
숭카놓고 지지고 볶꾸고 험시롱 묵을 수도 없응깨 돼지괴기 속살만 볼가갖고 쇠괴기라고 거짓뿌렝이험시롱 밥 욱에 놔 주먼 생전에 괴기 귀경도 제대로
못해 봐 농깨 쇠괴기라먼 쇠괴긴 줄 알고 최고로 맛나게 잘 자신다.

이렇코롬 어른을 섹이 묵고 살았응깨 저승에 가먼 갈 자리는
맡아놨다.



(거짓골 많이 헌 놈들만 잡아다가 쎗바닥을 빼는 지옥이 있다던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