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부지가 들려주는 물망골 이야기
이저삐리지 마라고 '물망골'
size=4> <상금마을 물망골에 얽힌 전설>
여름날 뜨거운 땡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로 산으로 싸돌아
다니던 개구장이들도 어진간히
기운이 빠지면 정자나무 그늘 아래로 약속이나 한 듯이 하나둘씩 모여 들기 시작합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어린 손주들을 보기도 하고, 개구장이들의 짖궂은 장난도 타일러가며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들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산들바람이 살랑대는 정자나무 그늘에는 오늘도 아이들이 모여 고누도 놓고 나무에도 오르내리며 놀다가 할아버지 곁으로 모여듭니다.
“할아씨! 재밌는 이약 좀 해 주이다!” 하고 졸라 대면, "야! 이놈들아! 이약 좋아허먼 가난뱅이 되는거여!" 하면서도 아이들 성화에
못이기는 체 슬그머니 이야기 보따리를 풉니다. 아이들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눈빛이 초롱초롱해지고 조용해지면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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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006060> (상금마을 전경)
“이
애기가 저 애기를 업고 벼름빡 삼십니를 올라 강깨 똥이 세 모데기 있는디···.” 하면 아이들은 금새 야단법석입니다.
“할아씨!
그런 거 말고 참말로 해 주이다!”
“맨날 그런거만 해 준다!” 하며 할아버지께 달려들어 못 견디게 합니다.
할아버지는 웃으시며
“알았다! 인자 참말로 해 주깨!” 하고 아이들을 다스리면, “또 거짓꼴로 허먼 안되요 이~!” 하며 다짐을 합니다.
항상 이야기
할 때마다 양념처럼 반복되는 이런 장난은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해 줍니다.
“그렁깨..... 시방부텀 나가 허는 이약은 그냥 무답시
지내서 허는 거시 아니고 우리 동내 뒤에 물망골이라는 꼴창 있재? 그 꼴창을 뭐땜시 물망골이라고 허는지 내력을 갤차 주껑깨 단단허니 명념해서 잘
들어야 헌다 이~!” 하며 분위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그러면서 허리춤에서 담배쌈지를 끄집어 내어 궐련을 말기 시작합니다. 성급한 아이들은 그
새를 못 참아 담뱃가루 하나라도 흘릴세라 조심하며 느릿느릿 손을 움직이면 “할아부지! 담배는 난중 피고 언능 이야기나 해 주이다!” 하고
졸라댑니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허허! 이 놈들! 엔간히 깝치싸라 이걸 몰아 물어야 옛날 야그가 솔솔 나오는 거여!” 하며
아이들의 성급함을 다스립니다. 담배에 불을 붙이서 빨아 당기고 아이들은 조바심을 태우며 기다리는 가운데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천천히 이어집니다.
“우리 동내 이름이 금촌인디 그 이름은 우리 동내 모냥이 꼭 선녀가 비단 짜는 베틀 맹키로 생기서 비단 금자 금촌이라고 헌다는
소리는 들었제?”
“얘~!” 아이들은 대답을 잘 해야 이야기 하는 사람도 신이나서
뒷 이야기가 잘 나온다는 것을 아는지라 소리도 우렁차게 대답합니다.
“동내 이름에 비단 금자가 있응깨 곡석도 잘되고 동내 사람덜 맘씨도 비단결 거치 보드라바서 옛적부터 인심 좋은 골로 명이 나
있는디, 그것도 그른 건 아니제마는 실상은 세상에 모든 인심은 물이 좋은 디서 나는 거이여! 그렁깨 먼 말끝테라도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어쩌고 저쩌고 안 허더냐!” 할아버지는 담배를 한 모금 맛있게 빨아 당기며 말을 이어갑니다.
“근디, 좋은 산이사 눈에 금방
배깅깨 언능 알아 볼 수가 있는디, 물이란 건 그리 쉽게 페나는 거시 아닝깨 그냥 물 맛만 보고 좋다 나쁘다 허고 말제마는 실상은 오래 묵음서
살아봐야 아는 거여!” “이 할아씨가 세상에 나지도 않았던 상구 예전에 어느 여름에 생긴 일인디, 아매 시방 맹키로 덥은 날이었쓸꺼여! 동내
뒤로 문뎅이 병에 걸린 사람이 옥곡쪽에서 산몬당을 넘어 옴시롱 땀을 몇 동우나 흘리고 가는디 곰탁으로 내리 성깨 솔낭구가 우거져 있고, 벼랑
바구 욱에서 시원허니 물이 쏟아져 내리는 물망골이 배기는디, 인자는 그 낭구들이 싹 다 베져뿔고 없제마는 그
직애는 엄청 굵은 솔낭구들이 욱어져서
호랭이가 나온다 헐 정도였씅깨 낮으로 댕기도 컴컴해서 혼차 댕길라먼 부섭고 그랬거덩! 땀을 뻘뻘 흘리고 고개를 넘어 오다가 물을 만내 농깨
얼매나 좋았것냐! ‘아이고! 더버 죽것는디 여그서 목물이나 좀 허고 가꺼나.....! ’ 허고는 아무도 안 채리봉깨 깨뎅이를 홀딱 벗어 부치고 물
떨어지는 바구밑으로 들어 가서 쪼글트리고 앉응깨 얼매나 씨언했것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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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006060>물망골 : 지금은 물길이
바뀌었지만 예전에는 이 바위 위로 물이 넘처 흘렀다.)
아이들은 문둥이가 물망골 물속에 들어 가 목욕을 한다는 소리에
기겁을 하며, “아이구! 더러바라, 우리 나무허로 감시롱 그 물을 묵었는디.....!” “나도...!” 하고 떠들며 금세 속이 메슥거리고
문둥병이 옮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모양입니다.
그 물을 먹지 않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며 빙긋이
웃으며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바구 욱에서 떨어지는 물은 한 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찹은 건디 그 속에 깨를 홀딱
벗고 들어 앉았씅깨 어쨌겄냐! 온 몸뎅이가 꽁꽁 얼어 붙는 거 겉음시롱도 피딱젱이가 붙어 근질근질허던 살 껍데기가 씨언~헝깨, 좋아서 어즘잔이
오래 앉잤던갑제...... 느그들도 알것제만은 문뎅이가 어디서 멱을 감겄냐? 넘우 동내 보또랑에서라도 멱 깜다 들키기만 허먼 맞아죽을 판인디,
어디 목간 기겡이나 했겄냐?"
"처량헌 제 신세를 한탄험시롱 부스럼 딱젱이거치 온 몸뎅이에 붙어 있는 살껍떡을 봉깨 ‘오랜만에 때나 한번
벳기 보꺼 나...?’ 허는 생각이 들었던 모냥이제....!" 하며 할아버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고 불씨만 남은 담배를 아까운지 겨우 입술을
대고 빨아들입니다.
아이들은 흉칙하게 생긴 문둥이가 저희들이 나무하러 뒷 산에 오르내릴때면 항상 지게를 받추어 놓고 시원한 물로
갈증을 씻고 가재도 잡던 물망골을 생각하며 그 속에 들어 앉아 피고름을 씻고 있는 문둥이의 모습을 상상하니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입니다.
이제 다시는 물망골의 물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씨팔! 더런 문뎅이 새끼가 멀라고 왔으까 이!” “패
직이 삐리먼 씨언허겄내!” 하며 곁에 있으면 당장 몽둥이라도 들고 때릴 기세들입니다.
“근디.....!”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가 이야기를 이어가자 아이들은 금새 조용해 지며 뒷말을 기다립니다.
“문뎅이가 참말로 대그빡에 털나고 첨으로 씨언허니 때나 한본
벳기 보자 허고 폴목아지부텀 살살 문지르는디.......! 히얀헌 일이 벌어진거제!” 하며 말을 끊고 뜸을 들이자 아이들은 침을 꼴딱 삼키며
제비 새끼들 처럼 할아버지의 입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느그들, 여름에 땡볕에 돌아 댕김시롱 새카머니 태와 노먼 난중에 구렁이 허물
벗기지덱기 살껍데기가 벳기지지야!” “얘...!” “그거 벳기먼 기분이 어쩌데?” “좋아요...!” “허물을 벳기먼 밑에 살은
어찌냐?” “힉허니 생깄어요...!”
“그래, 잘들 알거만! 시방 느그들이 말헌대로 물망골에서 문뎅이가 때를 벳길라고 폴목아지를 민깨
구렝이 허물 벗덱기 살껍떼기가 벗기지는거 아니겄냐?”
“문뎅이가 깜짝 놀래 갖고 장딴지도 문때 보고 오금쟁이로, 제드랑 밑으로,
사타리 밑으로, 손을 대서 미는 쪽쪽 껍데기가 벳기지는디.......! 참말로 환장헐 일이 생기 삥거제!”
할아버지의 표정은
숫제 그 때 그 문둥이라도 되는냥 신바람이 나 있습니다.
“문뎅이는 정신이 없이 정갱이 한본 문때 보고..... 배때지 한본 문때
보고..... 험시롱 금방 울다가 또 금새 웃슴서 꼭 미친놈 맨키로 정신없이 온 몸뗑이를 문때 제끼는디, 어~얼매나 지내고 껍데기를 다 벳기고
낭깨 땟국이 싹 빠지고 부시럼 딱젱이가 멀금허니 없어져 삐리고 낭깨 저거이 언제 문뎅이였던가 헐 정도로 깨끔허니 모냥이 배끼 삐릿제!”
할아버지는 눈을 지긋이 뜨고 문둥이 모습을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지나가던 산들바람도 정자나무 이파리에 기대어 숨을 죽이고 할아버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지 꼼짝하지 않습니다.
“근디 세상에 이렇코롬 천지 개벽헐 일이 생기고도 우리 동내 사람들은 짐작도 몬허고
있었제. 그 문뎅이가 물망골에서 병을 고치고 나서 주구 집이 가서 말을 헝깨, 그 말이 소문이 나고 나서야 보돕시 알게 된 거이제!”
“그 소리가 소문이 나 갖고 그 때 부텀은 우리 동내 물망골이 불이 날 정도로 물 맞으며 오는 사람들로 줄이 섰더란거여!”
산들바람은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였구나 하며 문득 정신을 차리고 제 갈길을 떠나며 이야기 듣기에 정신이 빠져있는 아이들의 목덜미를
살며시 쓰다듬고 누렇게 익어 가는 나락 논 고랑으로 파고 듭니다.
할아버지는 달콤하게 불어 오는 산들 바람을 한 모금 들이키며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그 전에는 물이 많고 말가서 '물 맑은 골!'이라고 했는디 그 일이 생긴 뒤로 사방팔방에서 피부병이 나거나 몸이
아푸다는 사람들이 와 갖고 병을 나사서 강깨 ‘물 맞는 골!’ 이라고 부르다가 세월이 강깨 배끼서 ‘물망골’ 이라고 부르게 된거이제.”
아이들은 그제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 소문이 나기 상구 전부터 우리 동내 사람들은 그 물을 질어다가 묵어농깨
피부병이라고는 생기는 벱이 없고 다른 동내 처자들은 시집 갈 때가 되먼 온 낯바닥에 뽀드락지가 생기서 걱정을 태산거치 허는디, 우리 동내처자들은
그런 거는 기겡도 못 허고 얼굴이 뽀얀 거시 달덩거리 거태서 시집가는디 걱정이 없었제!”
심각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 하나가
궁금한지 불쑥, “그렇코롬 좋은 물을 왜 시방은 안 질어다가 묵는다요?” 하고 묻습니다.
“야 이놈아! 그리 아깐 물을 왜 안 묵는다냐!
누구들 집이 가먼 부석에서 수도꼭찌만 틀먼 물이 출출 나오제? 그 물이 다 그 또랑에 물땅꼬를 맹글아서 모타 갖고 갈라 묵는 거시고 그리 귀헌
겅깨 애끼서 묵어야 허는거여! 인자 알것냐?” “ 얘~! ”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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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or=#006060> (울창한 숲이 사라진 자리에는 칡넝쿨만
무성하고 이제 삼나무만 군데군데 남아있다.)
할아버지는 이야기를 마치며 한마디 곁들입니다. “근디 시방은 그런 내력들도
다 잊어삐리고 상깨 이저삐리지 마라 허는 뜻으로 ‘물망골’ 이라 헌다 생각허먼 틀린 거는 아니꺼시다!”
“느구들은 나가 시방헌 이약을
이저삐리지 말고 좋은 물을 묵고 사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살아야 쓴다. 알것냐?” “얘~애!”
아이들은 목청도 좋게 힘차게 대답하며
이제는 울창하던 소나무 숲은 없어지고 칡넝쿨만 무성하니 우거져 있는 물망골을 바라보는 눈이 더욱 정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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