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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기로 만든 도서관!

농부2 2003. 6. 13. 21:19

작은 도서관 이야기(4)


 


 경운기로 만든 이동 도서관!




밤꽃이 만발해서 집을 드나들 때마다 진한 밤꽃 내음이 싱그럽다. 초여름 날씨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무더워지고 매실 수확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그래도 올해는 여기저기서 와서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 많은 도움이 된다.


현충일이 있어 징검다리 휴일이 되어 서울에서 대전에서 대구에서 동생들이 와서 매실 따는 일도 거들어 주고 밤새우며 술도 마시니 참으로 사람 사는 맛이 나는데 책 욕심이 많은 동생들이 가면서 책을 빌려 가기도 하니 더더욱 기분이 좋다. 따라 온 아이들은 아직 어려 책을 보는 것보다는 뛰어다니면 노는 일에 더 신이 났는데 그래도 어려서부터 아이들이 흙을 밟고 뛰어 노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다가 전국구 도서관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이제 가까운 이웃 아이들도 하나둘 발길을 트고 드나들고 멀리서 오는 수정이와 수지는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왔는데 다음 주에는 더 많이 올 것이라고 하고, 먼저 다녀 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들도 관심을 가지고 다녀 가고 싶다고 하니 다행이다. 그런데 시골마을 외진 곳에 있는 도서관이라 처음 오는 사람들이 쉽게 찾지를 못해서 헤매기도 하는데 도서관을 쉽게 찾아 올 수 있도록 마을 입구에 안내 표지판을 세울 일이 바빠졌다.


어미 고양이는 무서워 만지지도 못하면서 하루종일 새끼 고양이를 안고 다니며 좋아하는 현경이랑 처음 따라 온 동생 수정이는 달팽이도 잡고 개구리도 잡는 엉뚱한 녀석들인데 엄마랑 함께 살면서도 활달하고 먹성도 좋아 정이 간다. "느그들 여그 와서 놀다가 갈직애는 꼭 책 빌리 갖고 가서 담에 올 때까지 다 읽고 와야헌다 이~!" "예~!" "여그 아저씨는 책 많이 보는 아그들이 젤로 이삐고 뭐든지 다 해 주고 잡응깨 자주 오고 잡으먼 부지런허니 책 보거라 이~!" 아이들이 스스로 오고 싶어 하는 곳을 만든다면 그 다음은 따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종일 군것질도 안하고 뛰어 다니며 놀다가 점심 때가 되어서 준비해 온 장어를 구워 밥을 먹는 아이들의 상추쌈이 어른들보다 더 커서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는데 멀리서 온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사이에 근동에 사는 아이들이 왔다가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책만 살짝 빌려 가는 모습을 보니 아쉽기도 하다. 좀 더 자주 다니면서 낯이 익고 익숙해 지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때가 오겠지.


아랫방에는 도서관을 옮기기 전에 넘치는 책들을 둘 곳이 없어 가져다가 임시로 정리해 놓은 것이 아직도 그대로 쌓여 있는데 가끔씩 자고 가는 사람들도 있어 보기도 하니 그대로 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 내가 처음 문고운동을 시작하던 때는 1961년 엄대섭(嚴大燮) 선생이 전국민의 문맹퇴치 운동으로 시작한「농촌마을문고보급회」가 전국 방방곡곡 에 '마을문고'를 설치하고, 독서회를 조직하여 도서관이 없는 농어촌 주민들이 독서생활을 통해 낙후된 농촌을 계몽하기 위하여 만들어 진 마을문고가 20년이 되던 시기였고 1972년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이 한창 전국적으로 퍼져 있던 때였다.       

잘 나가던 새마을운동 열기에 편승하여 한 때 전국적인 도서 모으기 행사들도 서로 경쟁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질적인 수준은 별로였지만 물량으로는 제법 많은 도서들이 모여 전국의 새마을 문고로 보내 지기도 하였고 개인이나 단체에서 새마을 문고에 지원하는 사례들도 끊이지 않았었다.




문고를 하면서 82년도부터 시작한 마을 경로 잔치 행사는 해를 거듭해서 이어지는 동안 동민들과 더욱 친해지게 되었고, 이웃마을에서는 작은 동네서도 하는 일을 우리라고 못하겠냐 하는 분위기가 생겨 많은 동네들이 자발적으로 경로행사들을 하게 되었다. 이런 행사는 비용보다는 몸으로 준비하고 하루동안이라도 노인들을 시중드는 귀찮은 일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는데 함께 하루라도 노인들과 어울리면서 서로 한동네 살고 있음을 확인도 하는 자리가 되어 청소년들이 모이면 못된 짓만 한다는 어른들의 뿌리 깊은 생각을 쇄신시키는데 한 몫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에 정치적인 입김이 강했던 새마을 운동이 새마을 운동 중앙회장의 과욕으로 인하여 찬서리를 맞게 되었고 먼저 만들어졌으면서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끌려들어 가서 겨우 한켠에 끼어 서자 취급을 받던 새마을 문고는 아주 된서리를 맞고 전국적으로 20,000개가 넘던 크고 작은 문고들이 쇠락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변화에도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고 견딜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하게 정부의 지원이나 혜택이 없이 관심있는 향우나 지인들의 도움과 스스로의 힘으로 이끌어 나가던 온 문고였기에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장서 수도 2천권 3천권으로 늘어났고 작은 마을회관에 가득 만들어 놓은 서가가 비좁을 정도가 되었다.


책꽃이에 가득 모아지는 책은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쌓인 것인데 동네 아이들만 읽고 만다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마을 아이들을 불러 들이는 일이 쉽지도 않고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책을 이동하는 일도 어려운 일이었는데 오랫동안 이동도서관에 대하여 생각한 끝에 먼저 생각한 것이 경운기를 이용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생각하고 튼튼한 앵글을 사다가 조립하여 두 개를 만들어 경운기 적재함에 올려서 고무줄로 묶어서 고정한 후 이웃 마을로 가서 회관 마이크로 방송을 하고 아이들을 불러 내서 책을 빌려 주는 일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것도 책 무게와 밧줄로 묶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대부분 비포장 도로인 농촌 사정을 감안하지 않은 상태였기에 많은 책을 운반하는 일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으나 여기에도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