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동 사람들

백학동 머릿돌 올린 날!

농부2 2003. 9. 5. 21:53

 


백학동 머릿돌 올린 날!



참 후뻑지고 오진 날이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리가먼 이만큼이나 씨언허까?


긍깨 1993년 6월 25일에 술 좋아허는 30, 40대 청년들 여섯이 모치서 술묵는 계를 하나 맹글았는디 그 이름을 '백학동 사람들'이라고 지 부칬다.  넘헌티 궂은 소리 듣기 싫어라 허고 넘 간섭 받기 싫어라 허는 똥고집쟁이 촌놈들이라 맨날 모치서 술만 웬수 진 거맹키로 쥑이다가 하리는 백학동이라는 좋은 이름이 언재부턴가 없어져 뿔고 누가 안 들멕기링깨 요새 크는 아그들은 알도 못허는디 우리라도 나서서 갤차 조야 것다는디 맘이 모타졌고 20~30년 전에 수어댐 공사험서 물 속으로 쟁기 삐린 백학동 표석을 찾아 볼라고 몇 년을 애도 써 보다가 결국은 없어진 거는 없어진 겅깨 자꾸 들멕이 봐야 죽은 아 붕알 몬치깅깨 파이허고 새 돌을 찾아서 표석을 맹글아 보자! 허는 뜻을 세웠다.


근디 남정네들 술 묵으먼 호랭인들 못 때리 잡으까? 못치먼 말로는 금새라도 다 허꺼맹키로 떠들다가 술 깨고 갈리 삐리먼 언재 그랬냐 허고 마는 일이 보통인디 그래도 하도 자주 들멕기리다 봉깨 난중에는 참말로 안 허고는 안될 만큼 큰 짐이 되 뿔고 말았다.


10년동안 전주고 비씨고 헌 내막들을 다 이약헐라먼 한도 끝도 없씅깨 자파허고 한 삼년 전부터는 돌 엥기는디 들어갈 경비부터 맹글자 허고는 술값을 뜯어 모타 갖고 올 여름에는 기어이 그 돌을 엥기다가 백학동이라는 글 파고 백학동 들어가는 질 갓에다가 떡 버타놓코 낭깨 아이고야 참말로 인자 백학동이 한 인물 나는그마!


상구 예전에 도선국사가 백운산서 왕건이 갤추고 살던 때부터 백학동이라 불렀다허고 '지리산에는 청학이 백운산에는 백학이 있다'는 글도 있는디 어찌된 일인지 중간에 이름이 뚝 끊커져 뿔고 누가 썼는가는 몰라도 질갓에 있는 집채만헌 공실바구에다가 白鶴洞이라는 글을 크댐허니 새기놔서 지내 댕김서 보고 긍갑다 허고 살았었는디 그나마도 수어땜이 들어섬서 물 속에 쟁기 삐리고 나서는 백학동이 밥 멕이 주는 거 아니라 농깨 누가 챙기도 안허고 이저삐리고 여지껏 무심허니 살아왔다.



말 못허는 낭구는 말 헐 것도 없고 바굿뎅이도 크먼 영물이 되는 갑더마! 돌을 엥긴다고 강 한가운데 백히 있는 바구를 몇 년을 딜이다보고 재보고 했는디 거년 홍수 뒤에 가봉깨 야가 안배기 뿌는디 어떤 이는 누가 빼내가 삐맀다 글고 누구는 떠내리 가 삐맀다고도 허고 누구는 공사허는 사람들이 깨서 써 삐맀다고도 허는디 똥가린 볼시로 어디 배기기나 해야 허껀디 공사허는 바가치 차로 몬춤 있던 자리를 파보고 해도 안 배기서 파이치고 딴 바구를 귀해 봐야것다고 날 잡아 갖고 나설라는디 이 돌이 다시 나왔다네!


아무리 헤비도 안 나오던 놈이 봄 내 징허니 퍼 붓던 비땜시 꼬랑이 패이 내리감서 모래 속에 매매 묻히 있던 바구가 솟치 올라온 것이었는디 어찌나 반갑고 오지던지 성님들 소리 해 갖고 쐬주 한병 사 갖고 올라가서 한잔 붓고 그랬그마! 돌을 엥긴다는 날도 100톤짜리 기중기를 불러 딜이 갖고 새복부터 줄을 매서 들어 올리는디 폴뚝만헌 쐬줄이 돌을 걸어 땡깅깨 썪은 사나쿠 똥가리 맹키로 시마가리 없이 터져 뿌는디 아따! 이거시 장난이 아니그마 이~!


다시 순천서 줄을 구해 오라허고 그 참에 귀경삼아 올라 오신 어른들이 있어 간단허니라도 채리놓고 잔 올림서 "인자 존디로 엥기 드리껑깨 버타 쌓치말고 항꾸내 갑시다!" 허고 축문도 읽고 나서 새 줄 걸어 땡깅깨 그제서야 못 이기는체 허고 자리를 털고 인나는디 어메! 물 속에 땅 속에 백히 있어농깨 얼매나 큰지는 학실허니 몰랐었는디 참말로 겁나개 커 뿔그마! 기중기 저울에 35톤이 나온다는 이 바구는 어찌보먼 돌고래 맹키기도 허고 어찌보먼 개나 호랭이 겉기도 헌디 질개 뉘농깨 뉘(누에)거치 생깄그마!





이 엄청난 바구를 백학동 들어가는 고갯마루에다가 엥기는디 첨에는 세워서 놀라고 준비를 싹 다 해 놨었는디 바구가 하도 크고 봉깨 기냥 뉘피 놔도 좋컷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리 헐랑깨 여러 가지 새로 손 볼 일들이 많아지기는 헌디 한본 노먼 다시 손보고 못헝깨 찬찬허니 허더라도 좋다는대로 허기로 의논해 갖고 자리를 잡아 모싰그마!



땅 꺼질깨미 콘쿠리트로 자부동을 깔고 그 욱에다 편안허니 모시 놓고 낭깨 인자 글을 새기야 허는디 그것도 지방에서 글 잘 쓰시는 분들 중에서 모시먼 좋은디 여러 가지 사정이 안 맞고 나중에라도 말들이 많을상 시퍼서 한석봉선상님 글을 받아다가 여러날 공을 딜이서 새깄는디 선상님보다 더 잘 쓰는 사람 아니먼 까탈 안 직이것제?




일을 허다봉 깨 엥기는 디서부터 마지막 행사까지 세우자! 뉩히자!로 말이 다르고 질 쪽에서 보개 놓자! 오는 쪽에서 보개 허자!고 다투다가 글을 새기고 나서는 글 판디를 흰색을 보르자! 꺼먼 색을 보르자!로 태각기리기도 했는디 암튼 온 동민들이 관심이 있어 농깨 이런말 저런말 다 거드는 겅깨 끝까지 의논해 감서 좋은 일에 서운해라 허는 사람이 안 생기개 헐라고 무진 애를 썼그마! '백학동 사람들'은 비용이나 대고 뒤치닥거리나 허고 모든 일들은 주민 대표들헌티 맽기 삐리농깨 큰 소리 안나고 깨끔허니 일 마치고 제막을 허개 됐는디...십년을 베르다가 30, 40대가 40, 50대가 되갖고 보돕시 끝을 본 일인디 그래도 한가지 일은 마칬다는 생각에 모치서 다들 기분 좋은 술 한잔 했그마!







제막식헌다고 날 받아 놓고는 애도 많이 터잤는디 그래도 하두평상 찔찔대던 하늘이 좋은 날잉깨 하리나 참아보자 싶었던지 딱 그날은 비가 끈치 조서 얼매나 아짐찮턴지... 아직 일찍부터 노인네들이랑 청년들이랑 부녀회원들이랑 나와서 이 큰 행사를 거들고 축하허는 잔치마당이 벌어 졌는디 다들 참 잘 해놨다! 욕봤다! 해 쌍깨 기분도 좋터마!


어찌보먼 벨 것도 아니다 시푼 바굿뎅이 하나도 꼬랑 간데서 보돕시 노딧돌로나 써 묵던 놈을 제헌티 맞는 자리를 찾아 엥기는 일도 오지개 심이 들고 공을 딜이서 제자리 잡아 앉치농깨 이리 인물이 달라지는디 사람은 오죽허꺼여? 사람이던지 바굿뎅이든지 제자리 잡아 앉친다는 거시 얼매나 심든건지 인자 쬐끔은 알것그마!


시방부텀은 과냥시에서 이 젙에다가 우산각도 맹글고 작은 동산을 맹글고 따듬어서 지내 댕기시는 분들이 슀다가기 좋게 맹근당깨 백운산 아래 백학동을 찾는 분들은 질 갓에 버투고 있는 이 바굿돌 보먼 차 밧차 놓고 여그가 백학동이구나 허고 귀경들 허고 가이다 이~!